동농 김가진 선생의 서예 전시회 <백운서경>에 초대합니다.  

동농의 첫 번째 서예전이며
올해 초에 설립된 동농문화재단의 첫 사업입니다.  

대동단 총재이며 임시정부의 고문이었던 동농은
독립운동가였을 뿐 아니라 시문에도 조예가 깊은 당대 최고의 서예가였습니다.  

이번 전시회가
동농의 시문과 서예가 재조명되고, 동농의 애국정신과 헌신이 후대에 알려지고 계승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재)동농문화재단 이사장      김   선   현



전시 기간
2024년 07월 23일(화)~09월 19일(목)
예술의전당 서예관
오전10시~오후 6시
개막식
2024년 7월 23일(화) 오후 3시
예술의전당 서예관 2층

휴관일
매주 월요일
(재)동농문화재단
서울특별시 종로구 새문안로 5길 19, 로얄빌딩 6층
T. 02-3210-0411
F. 02-732-2870


운영위원의 작품 해설
일 시      매주 화요일 오후3시~4시
              7월 : 23일(유홍준) 30일(이동국)
              8월 : 6일(김채식) 13일(유홍준)
                       20일(이동국) 27일(김채식)
              9월 : 3일(이동국) 10일(김채식)
장 소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백운서경 전시장 현장
내 용      작품해설
참가비    무료
강연자    유홍준(전 문화재청장)
              이동국(경기도박물관장)
              김채식(경운초당 대표)



독립운동가 동농 김가진의 최초 서예전

동농(東農) 김가진(金嘉鎭, 1846~1922)은 대한제국의 대신(大臣)이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고문을 역임한 독립운동가이며 당대 최고의 서예가로 평가됩니다. 이번 전시는 최초의 김가진 서예전으로, 후손가에 전래된 유묵과 여러 기관의 소장품을 한자리에 모아 그의 서예 세계 전반을 살필 수 있도록 구성했습니다.

백운동주인 김가진의 서예 경지

전시 제목 백운서경(白雲書境)은 ‘김가진의 서예 경지(境地)’를 의미합니다. 김가진이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백운동 골짜기에 백운장(白雲莊)이라는 집을 짓고 스스로 백운동주인(白雲洞主人)이라고 한 일을 기린 것입니다. 지금도 백운동 골짜기의 암벽에는 김가진이 쓴 거대한 ‘백운동천(白雲洞天)’ 글씨가 남아 있습니다.



김가진의 삶과 예술을 조망하는 7개의 테마

전시회는 모두 7개 섹션으로 구성했습니다. 각 섹션의 제목은 모두 김가진의 인장 문구를 차용하였는데, 그 문구에는 김가진의 삶과 평소의 신조, 예술 세계가 반영되어 있습니다.





제1부 世篤忠貞,
대대로 지켜온 충심과 절개 

김가진의 가문과 생애
김가진은 병자호란 때 순절한 선원(仙源) 김상용(金尙容)의 후손으로, 가문이 지켜온 충절의 전통을 자부하며 이것을 목숨처럼 여겼습니다. 이에 개화기 때 고종을 보필하며 나라의 개화와 국민의 계몽에 힘썼고 국권이 피탈되자 대동단의 총재로서, 상해 임시정부의 고문으로서 독립운동에 투신했습니다. 그 정신과 실천은 아들 김의한, 며느리 정정화, 손자 김자동에게까지 이어졌는데, 이러한 김가진 가문의 연대기를 여기서 볼 수 있습니다.






제2부 紙短情長,
종이는 짧고 정은 길어 

김가진의 편지와 가족을 위해 쓴 글씨
김가진이 아들의 교육을 위해 쓴 한글 글씨와 천자문, 부인의 안부를 묻는 다정한 편지, 벗들과 시를 주고받으며 품평한 편지 등을 전시했습니다. 김가진의 작은 글씨들을 주로 모았는데, 그 내용을 따라가면 글자 사이사이에 깃든 따뜻한 정을 읽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세련된 소자서(小字書)의 멋을 음미할 수 있습니다.







제3부 詩書敦宿好,
시와 글씨는 내 오랜 벗일세 

김가진이 시와 격언을 쓴 글씨
김가진은 평생 시와 글씨를 즐긴 낭만의 문인이었습니다. 역대의 명시를 탐미하고 수많은 시를 지었으며 그것을 다시 서예라는 조형 예술로 승화했는데, 여기서는 그의 장기인 송나라 미불과 명나라 동기창의 서체를 소화한 동농 서풍의 진수를 볼 수 있습니다.








제4부 從吾所好,
내 좋아하는 바를 따르리 

김가진과 서화가들과의 교유
김가진은 서화 감상을 좋아하였고 김석준(金奭準), 안중식(安中植), 김규진(金圭鎭), 지운영(池雲英), 이도영(李道榮) 등 당대 최고의 서화가와 교유하며 막후에서 그들의 활동을 조력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독립운동가이자 서화계의 종장이었던 오세창(吳世昌)과 깊은 인연을 맺었는데, 이는 지금껏 잘 알려지지 않은 김가진의 서화계 활동을 조명하는 데 중요한 실마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제5부 傳名千年,
천년 뒤에도 이름이 전해지리 

김가진의 각서, 비문, 현판 글씨
김가진은 고위관료였고 또 당대부터 글씨로 유명하였기에 비문과 현판 글씨 요청을 수없이 받았습니다. 창덕궁 후원에 걸린 현판은 거의 다 그의 글씨인데, 이번 전시에는 창덕궁에 현전하지 않는 현판 글씨도 출품되었습니다. 그리고 잘 알려지지 않은 김가진의 대자서(大字書)도 이번 전시에 다수 출품되었습니다. 독립문의 한자와 한글 편액은 김가진의 글씨로 전해지고 있는데, 이번에 출품된 대폭의 글씨들과 독립문 글씨를 비교해 보면 김가진이 독립문 글씨를 썼다는 데에 대개 동의할 것입니다.










제6부 但求无愧我心,
다만 내 마음에 부끄럽지 않기를

김가진의 동지, 개화파와 독립운동가 관련 글씨
김가진이 평생의 벗이자 개화사상의 인도자였던 이조연(李祖淵)에게 바친 제문(祭文), 을사늑약 때 순절한 충정공 민영환(閔泳渙)을 애도하며 쓴 만장(挽章), 상해 임시정부 망명 시절 독립지사들을 위해 쓴 글씨가 출품되었고, 독립운동가 오세창, 김구, 신익희가 김가진의 아들과 며느리에게 써 준 글씨도 함께 나왔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남아 있지 않지만, 어느 독립지사가 썼을 것으로 생각되는 김가진의 묘비 글씨를 재현하여 전시의 마지막에 두었습니다. 아직도 이역만리에 누워 있는 그의 유해가 어서 돌아오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은 것입니다.









제7부 我心於此,
내 마음이 여기 있다네

김가진의 인장
후손가에 전하는 김가진의 인장 60여 점을 전시했습니다. 대부분 그의 성명이나 호를 새긴 것이지만, 전시의 소주제 제목으로 차용한 문구처럼 그의 평소 마음과 지향을 읽을 수 있는 문자 도장들도 다수 있습니다. 김가진은 서예 작품의 내용과 목적에 따라 그에 어울리는 인장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인장은 그의 서예 작품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창구라 할 수 있습니다.